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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과 한자

동방존자 2008. 3. 19. 10:38

갑골문과 한자


한자는 우리 민족이 만들었는가? / 한겨레신문 / 200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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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하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한자는 동이족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작품이며,

최소한 우리민족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만큼 동방문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이족과 우리민족을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 역시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과연 이 문자는 누구의 작품일까?[방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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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자를 들여다보니 한자는 우리민족이 만들었다?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사진설명 : 중국 영하지방 바위에 새겨진 사냥 그림(좌) /

함경북도 무산읍 청동기 시대 집터에서 발굴된 무자갑골과 중국 은나라 때 갑골(우)

`한자는 처음 동이족이 만들었다?'

한자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그 발생과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중국이 창조자로 알려져있지만 한민족인 동이족이었다는 주장도 종종 제기돼왔다.

한반도주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는 김성재(46)씨는

“한자의 원형이 된 갑골문을 남긴 은나라 사람들은 바로 동이족의 일파였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주장을 다시 풀어 쓰면 한자는 중국인이 만들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중국에서 동이라고 부르는 한민족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수년에 걸쳐 집필했다는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펴냄)에는

자칫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런 주장을 단호히 펴는 이유와 논거가 700여쪽에

걸쳐 빼곡히 담겨 있다.

그가 펼치는 논리는 이렇다.

한반도 남쪽 김해 땅의 수로왕 뒷산에 출토되는 글자없는 갑골,

즉 `무자갑골'은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 그리고 일본에까지 분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서만주 발해만 북쪽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곳은 바로 동이족의 근거지였다.

또 지금의 한자 꼴은 발해만 지역과 산동반도에서 먼저 나타났다.

그곳은 당시 중국 민족의 뿌리인 화하족의 영역이 아닌 고조선의 영토였다.

발해만 북쪽 홍산문화 토기에 새 발자국 모양의 글자 등 상형문자가 선연히 남아있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고조선 지역의 빗살무늬 토기와 청동 거울 뒷면의 복잡한 기하학 무늬들도

단순 문양이 아니라 글자이거나 글자의 변형이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한자를 우리 민족만의 창작품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한자의 구조로 볼 때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글자꼴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선조들이 한자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한국상고사 논쟁에 그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먼저 영토 문제인데, 동이족의 활동무대가 산동성을 포함한 하남성 동남쪽 등에까지

광활한 지역에 이른다는 학설이다.

또 갑골문자가 맨 처음 동이족의 땅에서 나온다는 것도 그의 주장에 연결된다.

최초의 농경신인 신농씨가 동이족이며,

<한비자> 등의 문헌 기록에 따라 동이족인 순임금이 산동성 역산에서 흑도문화를 일으키고

역시 동이족에 의해 건국된 은나라가 이를 계승한 것도 같은 논리다.

이런 이유로 채색토기 등에 새겨진 기호가 발전해 갑골문자의 원형이 되었고

이는 또 한자의 기원인 동이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내 상고사 연구의 최대 논쟁 가운데 하나인 한자 기원에 대한 이런 주장은

고고학적 연구와 문헌학적 고증 절차를 통한 논증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중국쪽의 역사 축소에 가로막혀 그다지 큰 진전을 보지 못해온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지은이는 갑골에 숨겨진 고대사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1700자에 이르는 한자의 연원과

시대별 변천 과정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했다.

여기에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들을 꼼꼼히 훑는 정성을 아울렀다.

작은 단락마다 동굴 벽화와 갑골문, 유물 사진 등 다양한 시각 자료들을 실어 흥미를 더하고,

학술용어가 아닌 이야기체로 서술해 역사소설처럼 읽히는 맛을 낸 점도 책의 특징이다.

 

홍대선 기자hongds@hani.co.kr

 

[이덕일] 원시한자인 갑골문은 동이족의 글자

 

 甲骨文과 漢字


한자(漢字)의 원형으로 알려진 갑골문(甲骨文)이 발견된 것은 불과 1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1899년 학질에 걸린 청나라 국자감제주(國子監祭酒) 왕의영(王懿榮·1845~1900)은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처방에 따라 오래된 거북 뼈를 사서 
달여 마시려다 용골(龍骨)이라 불리던 짐승 뼈에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금석학(金石學)에 조예가 깊은 유철운(劉鐵雲)이 뼈의 글자가
그때까지 알려진 금석문보다 더 오래된 것임을 알아냈다.
왕의영은 제자 유악(劉顎)과 함께 그 뼈의 출처가 하남성
(河南省) 북쪽 안양현(安陽縣) 소둔(小屯)임을 밝혀냈다.
 이곳은 다름 아닌 고대 은(殷)왕조의 수도였던 은허(殷墟)였다.
그런데 근래 은나라를 중국 민족의 뿌리인 화하계(華夏系)가
아니라 동이계(東夷系)로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주목된다.

은나라는 하북(河北) 등 발해 연안 지역에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갑골문도 동쪽으로 갈수록 다수 발견되는데 발해 연안과

산동(山東)·하남(河南), 그리고 요령(遼寧)과 길림(吉林) 지방

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갑골문을 동이계 문자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중국 학자들은

갑골문에 알타이어(語)의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갑골문은 복사(卜師)가 신(神)에게 미래의 일을 묻는

복문사(卜問辭)로서 부호가 아니라 그림으로 묘사한 상형문

(象形文)이다.

상형문은 본래 고립어 구조로서 특정어의 요소를 찾기 어렵게 되어 있다.
주(周)나라가 은나라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한 것도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들이 불과 100여 년 전에야 한자의 기원을 알게 된

것도 은나라의 이민족(異民族)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숫자를 셀 때도 중국인들은 새끼줄에 매듭을 짓는 결승(結繩)

방식으로, 갑골문의 숫자를 사용했던 동이족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탈리아의 라틴어가 전 유럽의 언어가 된 것처럼

은나라의 한자는 동아시아 전체의 문자가 되었다.

천자문(千字文), 생활한자(生活漢字) 등 한자 배우기 열기가

높아 가고 있는데 한자 학습을 넘어 그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한자는 중국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조선일보]
입력 : 2006.02.15 19:01 10' / 수정 : 2006.02.16 01:3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