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고대한국 문명 ::: 마 문명-005
[솔본님등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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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인돌의 반이상이 한반도에 있고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반도에 있다.( 전남 화순 - 8천년전 것.)
[신라-발해]시대 즉 [남북국시대]의 신라의 영토가 대략 위 [남방식 고인돌] 영역과 같다.
즉
[후 신라]와 [발해(후고구려)]는 대강 청궁(靑穹)씨와 황궁(黃穹)씨의 땅 이었던 것.
[후 신라] - 대략 옛 청궁(靑穹)씨 나라의 영역.
[후 고구려(발해)] - 대략 옛 황궁(黃穹)씨 나라의 영역.
진한 - 주로 북방식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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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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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 주로 남방식 고인돌
대략 대동강 이남 - [남방식 고인돌] - 청궁(靑穹)씨 나라의 영역.
대략 대동강 이북 - [북방식 고인돌] - 황궁(黃穹)씨 나라의 영역.
황궁(黃穹)씨의 천산주(天山洲: 대동강 이북)는 북방식 고인돌 문화
(북방식 고인돌은 돌관이 땅위에 있다.)
비파형동검 출토상황을 보면 남북한과 만주가 모두 [고조선 연방]
북경 지역에서도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북경지역 역시 고조선의 일부였다 하겠다.
나중에 고구려가 북경지역에 [고려성]을 만들고
고구려의 영역임을 주장한 것은 이러한 이유.
고구려는 고조선의 정통계승자를 자처했기 때문.
물론 백제, 신라 역시 고조선의 정통계승자를 자처했고
신라장군 김유신이 [삼한의 통일]을 이루겠다 한 것은
위 지도의 삼한 즉 고조선의 영토를 모두 회복하겠다 한 것.
나중에 고려장군 최영이 주장한 [삼한의 통일] 역시 그러한 것.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변한 지역에 있었다.
은나라가 문을 닫자 기자는 고조선에 귀순하여 변한지방왕에 오른다.
기자는 은나라 왕족인데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유명하다.
중국역사책에 나오는 귀절
" 은나라의 뒤를 이은 주나라의 임금이 떠나간 기자를 훌륭히 생각해서
그래도 그가 주나라의 신하라고 선언했다.(책봉)
하지만 기자는 주나라의 신하는 아니었다." 라는 귀절에서
고조선은 중국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음이 더욱 드러난다.
그리고 기자가 망명한 곳이 고조선이었다는 점에서
은나라 왕족이 동이족이었음이 도욱 드러난다 하겠다.
나중에 위만이 와서 변한지방왕이 되는데
상투를 틀고 오는 등 자신이 동이족이라고 자칭한다.
상투는 한민족 고유의 문화.
소위 한사군이 존재했다 해도 변한지방에 존재했다.
즉 변한지방 위만조선 땅에 존재했다.
그에 대한 근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후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고조선이 문을 닫은 후 고조선의 각지역이 독립국이 되는데
그 중 낙랑국이라는 나라들이 있었다.
낙랑국은 여러개 있었는데 낙랑이란 말은 한국어 나라(국가)라는 말.
낙랑군과 낙랑국(國)은 다르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 역시 낙랑국 공주와의 일인데
낙랑군 태수의 딸이라 기록되지 않고
낙랑국 최씨 왕의 공주라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그리고 그 낙랑국의 위치가 옥저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낙랑군과 낙랑국(國)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원래부터 한국의 상국이었거든' 하고 저기하려는 중국의 오랜 역사왜곡과
식민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일제의 역사왜곡이
여러가지로 한국사를 난도질해 왔다.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신자세를 되돌아 볼 일.
남탓만 하면 발전이 없다.
국제정세란 냉혹한 것이기도 하고.
북방식 고인돌 지역 즉 [황궁(黃穹)씨(환인(桓因)씨)의 나라]와
남방식 고인돌 지역 즉 [청궁(靑穹)씨의 나라]를 합치면
한반도와 만주.
[대동강 이남에는 주로 남방식 고인돌]
[대동강 이북에는 주로 북방식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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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는 고대한국(환국)의 중심지가 그렇다는 것이고
고대 한국의 문명이 전파된 지역들도 보자면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라 쓰는 것도 부족하다.
고대한국문명은 전세계적으로 전파된다.
물론 대동강 이남의 [청궁(靑穹)씨의 나라]는 단군왕검이전까지 따로 독립국이었고
[고조선 연방]으로 평화적 통일을 이룬 후에도 독자적인 문화가 전승됐고
고조선이 문을 닫은 후에는 [마한]으로 다시 따로 독립한다.
그리고 옛기록에
'파나류산 밑에 한인(환인)씨의 나라가 있나니 천해(天海) 동쪽의 땅을 파나류국이라 한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北海)라 한다.' 했는데
여기서 천해(天海) 즉 북해(北海)란 지금의 발해(서해 위쪽 바다)
즉
[한인(환인)씨의 나라]가 대강 지금의 [대동강 이북~ 만주]에 있다는 말.
이는 북방식 고인돌 지역과 일치한다.
'파나류산'은 백두산을 지칭한 것으로 본다.
천산주(天山洲 : 백두산 지역) 즉 위 그림의 대략 [북방식 고인돌] 지역은
그 임금님이 [황궁(黃穹)씨 -> 유인(有因)씨 -> 환인(桓因:한인)씨] 로 이어진다.
(이 분들을 통칭해서 환인(桓因:한인)씨 로 칭하기도 한다.)
환인(桓因:한인)씨는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분으로 환웅(桓雄:한웅)씨가 그 아드님.
환웅(桓雄:한웅)씨는 요하(랴오허)지역으로도 가서 문명을 전한 것으로 본다. (홍산문명)
황하문명의 뿌리도 배달문명 <- 관련글
단군왕검께서는 아사달(평양)에서 다시 새로이 나라를 건국하신 것으로 본다.
황궁(黃穹)씨 -> 유인(有因)씨 -> 환인(桓因)씨 -> 환웅(桓雄)씨 -> 단군왕검.
대강보면
대동강 이남 - [청궁(靑穹)씨의 나라]
대동강 이북 - [황궁(黃穹)씨(환인(桓因)씨)의 나라]
여기서 우리는 왜 단군왕검께서 대동강가 평양에
삼한을 통합하는 수도를 세웠는지 알수 있다.
단군왕검께서는 [청궁(靑穹)씨의 나라]와 [황궁(黃穹)씨(환인(桓因)씨)의 나라]를
다시 통합하고자 하신 것.
실제로 두나라는 다시 통합된다. 이를 흔히 [삼한의 통합]이라 부른다.
(후에 신라장군 김유신과 고려 장군 최영이 [삼한의 통합]을 다시 이루겠다 한 것은
단지 남한을 통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군왕검께서 하셨던 것처럼 하겠다 한 것.
신라는 [청궁(靑穹)씨의 나라]의 통합에는 성공하고
[황궁(黃穹)씨(환인(桓因)씨)의 나라]에는 발해(후고구려)가 생긴다.
이것이 남북국시대.)
대동강(大同江)의 이름 대동(大同 )은 [위대한 통합]을 뜻한다.
단군왕검은 진한분이고 [마한과 진한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마한 땅의 [물의 중심]과 [산의 중심]에 천제단을 세우신 것으로 본다.
한강
ㅇㅇㅇㅇ강화도 ㅇㅇㅇㅇㅇㅇㅇㅇ 금강산
ㅇ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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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ㅇ 태백산
강 ㅇ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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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ㅣ
한라산
강화도는 서울한강이 황해한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큰 섬.
[물의 중심]의 의미가 있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허리]라 불리는 곳이고
이는 [산의 중심]의 의미가 있다.
이는 기원전 2282년에 해당하며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제단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광장으로 조성된 참성단은
"우리나라 수천리 땅에 강화는 나라의 방패,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기록에 신라에서도 태백산을 3산 5악(三山五岳)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는 “일성왕 5년 10월에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고 기록했으며,
‘동국여지승람’은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으로, 중사(中祀)의 제를 올리던 곳”이라고 전한다.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성현의 ‘허백당집’에 는 “삼도(三道:강원, 경상, 충청도)의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천왕당을 지어 단군의 상을 모셔놓고 제사하는데,
철 따라 천제를 모시고자 오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깨가 서로 부딪치고 앞서 가는 사람의 발 뒤꿈치를 밟을 정도”라고
당시 천제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황제(皇帝)의 황(皇)자는 백왕(白王) 즉 백민(白民)의 왕
즉 배달민족의 왕이라는 뜻.
고대 중국에서는 동이족(배달민족 한민족)을 백민(白民)으로도 많이 기록했다.
광개토대왕(태왕)이 그냥 대왕, 태왕으로 불린 것도
[배달민족의 임금]은 그냥 왕(王)이라 불려도 저절로 황(皇)이라는 생각 때문.
황(皇)이라는 글자 자체가 [배달 임금]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
그래서 그 강력했던 광개토대왕(태왕)도 굳이 황제(皇帝)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배달임금은 그냥 왕이라 해도 그게 곧 황제다.' 라는 인식 때문.
그래서 그냥 대왕, 태왕 등으로 불린다.)
대동강 이남 [청궁(靑穹)씨의 나라]를 마한이라 불렀다.
일제는 특히 이 마한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무지하게 애썼다.
약 2천4백년전에 일본에 최초의 쌀농사, 금속문명을 전해준 것이
바로 이 마한이기 때문.
이는 그들의 식민지배의 명분을 무참히 뭉개는 일이었기 때문에
마한의 존재는 일제에게는 눈의 가시.
그래서 일제 학자들은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만을 부각시켰고
마치 한국역사가 2천년 밖에 안되는 듯이 치밀한 공작을 계속했다.
그러한 영향 등인지 지금도 마한의 유물들은 많은 부분
[남한내의 초기백제 유물]로 '둔갑'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도 있다.
일제시대에 강단(학교)사학자들은 일제의 공작에 반발할 수도 없었고
삼국시대 이전의 한국고대사를 밝히려던 재야사학자들은
일제에 의해서 무참히 살해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숱한 분들의 희생덕분에 탄생했다.
대동강 이북 [황궁(黃穹)씨(환인(桓因)씨)의 나라]를 진한이라 불렀다.
환웅(桓雄:한웅)씨가 일으킨 만주서부(요녕) 홍산문명과 중국동해안 동이족을 변한이라 불렀다.
변한은 진한의 일파이고
그러므로 마한과 진한만 통합되면 삼한의 통합이기 때문에
고조선의 수도는 대동강가에 세워졌다.
단군께서 [진한-변한]분이므로 [단군직할지]는 진한이 되고
[마한]은 통일후에도 문화적 독자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주로 남방식 고인돌을 만들었으며
기원전 1세기 경 고조선이 문을 닫은 후 마한은 다시 따로 독립하여
거의 삼국시대 후기까지 수백년간 존재한다.
오랜세월 피가 섞여서 한민족은 마한 진한 변한의 피가 다 섞인 사람들이 되었는데 (주로 같은 한민족끼리 결혼을 하였으므로.)
지역적으로 보자면 마한의 저기는 전남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본다.
가야 백제 신라는 모두 [진한-변한]에서 내려온 나라들.
(그래서 신라 금관 등도 모두 만주식)
[진한-변한]에서 내려온 가야 백제 신라가 한반도 중남부 마한인들과 섞이면서
[시너지효과]가 생겨난다.
단군왕검께서 마한과 진한의 중앙인 대동강가에 아사달을 세우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마한과 진한의 재통일은
가야 백제 신라의 남하로 더욱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마한]인들과 [진한-변한]인들이 대대적으로 섞이기 시작한 것.
오랜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경상도에 사는 사람들이 마한의 피가 더 많은지
전라도에 사는 사람들이 마한의 피가 더 많은지도
확실치 않을 정도가 됐다.
물론 마한과 진한-변한 모두 원조 한문명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원래 한뿌리.
이는 지금의 남한과 북한이 원래 한뿌리인 것과 같다.
그리고 고구려가 문을 닫으면서 많은 고구려인들이 마한땅(대동강 이남)로 내려오고
발해(후고구려)가 문을 닫으면서 또한 수많은 발해인들이 마한땅(대동강 이남)로 내려오고
그리하여 대강 신라말기, 근세고려 건국무렵부터는
한반도에 마한 진한 변한인들이 자유로이 어울려 살게 되고
고조선의 부활을 뜻하는 근세조선의 건국이 있게 되었는데
고조선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등 국가의 권력은
대강 마한인들보다는 진한-변한인들쪽에 좀 더 많이 있었다 보이는데
대한제국이 건국되면서 (고)조선보다 더 근본적인 이름인
한국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고 (진한 변한 마한)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드디어 민주주의가 되고
더욱 진정한 의미의 마한 진한 변한 삼한의 통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 같다.
오랜세월 피가 섞이면서
경상도인이 진한-변한인이고 전라도인이 마한인이라는 경계도 허물어진지 이미 오래이니
지역감정이란건 쓸데 없는 것이고
단군께서 삼한의 재통합을 시작하신지 수천년만에
드디어 진정한 삼한의 통합이 되어가니
남북한이 통일되어 모든 한민족이 어울려 살게 되면
드디어 수천년만에 청궁씨의 나라와 황궁(환인)씨의 나라가
다시 통합되는 세계사적 대사건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겠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통일은 한민족에게 수천년 역사적 숙원이라고도 하겠다.
2만년전~1만2천년전 당시에는 기후가 지금보다 추웠다.
그래서 빙하가 많아지고 지구의 물이 거기에 많이 존재해서
바다에 물이 적었고 그래서 황해가 육지였던 것.
지금보다 추웠으므로 지금의 제주도, 경남, 전남 등의 기온이
지금의 서울,경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마고성의 위치]는 황해대강 하류의 삼각주, 당시의 기온 등을 봐서 전남 앞바다로 보이며
백제의 수도도 아니었던 전남이 그토록 강한 특성을 가지는 이유가
고대에서 이어지는 무의식적인 것 같다.
( 현재 남한에서 가장 정치적 특성이 강한 곳이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북과 상당기간 마한의 중심지였던 전남.)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단히 애절한 노래다.
백제에 관계된 노래라면 [부여의 눈물] [공주의 눈물]이어야 하는데
왜 하필 [목포의 눈물]인가.
백제의 중심부도 아니었던 목포인데.
[목포의 눈물]은 옛 마문명(원조 한문명)에 대한 무의식적 향수가 아닐까.
마치 제주도의 [이어도 전설] 처럼.
( 이어도의 전설은 이어도가 아직 섬이었을때 이야기이거나
바다에 가라앉았지만 얕게 가라앉아서
물위에서 보일 때 이야기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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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 가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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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에 보면 삼학도(三鶴島)는 목포 앞바다의 3개의 섬.
지금은 방조제를 만들어서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 파도 깊이 바다 속으로 뱃노래가 스며든다."
바.다.속.
의미 심장해 보인다.
(예술가는 영감(직감)에 산다는 말이 있다.)
황해속을 뒤진다면 목포앞바다부터 뒤져야 할 듯.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7.2km 떨어진 곳에 흑산도[黑山島]라는 섬이 있다.
홍어로 유명한 섬.
이곳은 원래 현산도[玄山島]였는데
예전 어떤 권세가들이 진리를 뜻하는 현[玄]자를 쓰는 것이 건방지다 하여
흑산도[黑山島]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흑산도[黑山島]는 고대 원조 한문명의 중심지에서 가까운 섬으로 보인다.
황해 대강 하류에 거대한 삼각주가 있었을 것이고
(삼각주는 농사짓기 좋은 기름진 땅.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도 삼각주. )
원래 그 삼각주 지역의 산이었을 흑산도[黑山島]
지금 서울의 북한산 정도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
흑산도가 산이었을 당시 당시 원조 한문명에서는 이를 [한산] [헌산] 정도로 부르지 않았을까.
[ㅎ.ㄴ] -> 한 헌 혼 훈 흔 힌
[ㅎ.ㄴ]은 태양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한자로 표기된 이름이 현산[玄山]
그 현산[玄山]이 나중에 섬이 되어 현산도[玄山島]
부산도 마찬가지.
당시 낙동강 하류 김해평야 삼각주 기름진 들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이 한국 제2의 도시인 것처럼.
당시 [황해대강 삼각주] 다음으로 [낙동강 삼각주]가 컸을 것이고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부산의 어느 산 이름이 부산이었다고 본다.
마산도 마찬가지.
삼각주는 농사짓기도 좋고 바다와도 가까와서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지금의 낙동강 하류 바다속에도 많은 고대 유물들이 있을 것이다.
즉 남한의 서해 남해는 세계최고의 고대유물 보고.
섬들이 많다고 하여 다도해라 부르는데
그 섬들이 고대에는 산들.
고대 [낙동강 삼각주] 사람들은 지금 마산의 어느 산을
[마산] 즉 [어머니산]이라 부르고
지금 부산의 어느 산을 [부산] 즉 [아버지산]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부산[釜山]의 부[釜]자는 아버지 부[父] + 쇠 금[金]
금[金]은 원래 금속을 뜻하므로
부[釜]자는 [금속문명을 가진 훌륭한 아버지]를 뜻한다.
쇠 금[金]자는 원래 [금속]이라는 뜻인데
그 글자 모양의 유래가 알려진 바가 없다.
필자는 쇠 금[金]자가 [僉]자를 단순화시킨 것이라 본다.
도대체 [僉]은 무엇인가. <- 관련글
단군왕검께서 삼한을 통합하시기 이전 일이다.
천성(양심)을 회복하겠다고 고행의 길을 떠난
4부족이 차차 서로 남처럼 대하게 되자
마고할머니가 화가 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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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마고(마 할머니)가 궁희, 소희와 더불어 대성(大城)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東)과 서(西)에 크게 넘쳐
운해주(현 한반도쪽)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현 중국 동해안쪽)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麻故與二姬 修補大城 注入天水 淸掃城內 移大城於虛達之上
是時 淸掃之水 大漲於東西 大破雲海之地 多滅月息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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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할머니가 물을 부어서
그 물이 넘쳐서
[운해주(한반도쪽)]와 [월식주(중국동해안쪽)]으로 물이 밀려들었다는 것.
기록과 과학적 고증이 일치하는 순간.
바다물이 들이차서 1만2천년전~8천년전에 황해대평원은 물속으로 잠겼다.
위 글은 당시 바다물이 들이차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바다물은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격히 들이찼던 것으로 본다.
전설은 단지 전설만이 아닌 것.
삼국유사에 보면 환인(한인)임금이 환웅(한웅)임금을 보내고 그 아들되는 분이 단군왕검.
그런데 부도지는 이에 대한 설명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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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황궁씨가 천산주(백두산 지역)에 도착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천성(양심)의 회복을 서약하고,
사람들에게 수도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하였다.
곧 맏아들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밝히게 하고,
들째 아들과 세째 아들로 하여금 여러 땅을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천산주 원주민)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환인(桓因:한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사람답게 사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점점 본성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씨, 유인씨, 환인씨)가 삼천년 동안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환인씨의 아들 환웅(桓雄:한웅)씨는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고 천부 삼인을 계승하였다.
( 桓因氏之子桓雄氏 生而有大志 繼承天符三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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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부도지]의 글에서 보듯이
황궁씨(黃穹氏) -> 유인씨(有因氏) -> 한인(桓因: 환인)씨 로 3천년을 내려오고
후에 환웅(한웅)씨가 이어받는다.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한인(桓因: 환인)씨]를 통칭해서 [환인씨] 라고도 하는데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환인(桓因: 한인)씨가 3분인지
많은 분들을 상징적으로 3분으로 써 놓았는지는 알수 없다.
그런데 그 장소가 바로 천산주(天山洲) 즉 백두산 부근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그 지역에는 환인(桓仁)이라는 곳이 있다.
바로 아래 지도의 환런.
이 환인(桓仁) 즉 환런은 고구려 시조 주몽(추모)임금이 처음 고구려를 세운 곳.
고구려는 [다물]이라 하여 고대 한민족의 영토를 모두 찾겠다고 한 민족정신의 나라.
(물론 백제, 신라도 그랬다.)
그 고구려의 시조 주몽(추모)임금이 환인(桓仁)에서 나라를 건국한 것도 예사롭지 않고
또한 [장군총과 태왕릉의 비밀]이 조금 더 벗겨지는 것은 아닐까.
즉 고구려는 [환인(桓因: 한인)씨 나라의 중심지]에서 건국했고
계속해서 만주, 평양 등 옛 [환인(桓因: 한인)씨 나라] 지역에 존재한다.
그래서 피라미드등 고대 한국의 유물들이 후에 고구려 것으로 착각되게 되었고
이러한 착각을 방조, 조장한 것이 일제와 중국당국의 어떤 인사들.
그들로서는 한국의 유구한 역사를 감추고 싶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한국사는 없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이에 동조한 것이 국내의 어떤 인사들. 외세를 등에 업고 한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
( 북한권력 역시 남한에 '외세'로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장군총, 태왕릉 등 약 1만 2천여기의 피라미드는 대부분 고구려의 것이 아니라
약 1만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인(桓因: 한인)씨 나라 때 만든 것.
앞에서도 밝혔듯이 장군총, 태왕릉 등이 고구려때 것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
고구려때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어떤이들의 '공작'이 있을 뿐.
환인(桓因)씨는 원래 한인씨.
[桓]자는 원래는 [환]이 아니라 [한]
옥편의 [桓]자 발음은 호단절(胡端切)
즉 [(호의) ㅎ] + [(단의) 안] = 한
즉 [한인(환인)]씨의 나라는 그 이름이 [한국]
[환인(桓因: 한인)씨의 나라]는 백두산부근지역 이었다.
특히 압록강 지역.
환인씨의 아들 환웅(한웅)씨는 약 6천년전에 요녕(만주서부)로 가서
홍산문명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