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한국의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 - 실물크기
- 국보 141호 - 고조선 (강원도 출토)
( 문화재청 해당 링크)
http://www.cha.go.kr/uni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1,01410000,11&queryText=V_KDCD=11
다뉴세문경은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한민족 고유의 것.
위 사진의 것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여러개의 다뉴세문경 중 하나.
위의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은 지름 21.2㎝로 위 사진은 실물크기이다.
그런데 이만한 크기 속에
무려 1만 3천여개의 선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0.02mm 의 세밀한 선들이 놀라운 정밀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일본 등의 유물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높은 수준.
현대 과학이 이것을 복원하려고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도 똑같게 복원을 못하고 있다.
현대과학으로도 복원이 안되고 있는 이러한 기술.
[고대 원조 한민족 문명] 즉 [마문명]의 놀라움은
이렇게 군데군데서 드러나고 있다 하겠다.
고대 한민족의 금속기술 중국보다 앞섰다. <- 관련글
전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원조 한문명 ] 즉 [마 문명]은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황해대평원과 마찬가지로 주로 평야지대에서 문명지대를 이뤘다.
그런 곳이 사람이 살기 좋으므로 당연히.
그런데 약 1만년 2천년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바다물이 많아지고
고대의 평야지대는 대부분 바다 속에 잠겼다.
황해대평원이 바다에 잠겨서 지금은 황해(서해)바다인 것처럼.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대홍수]전설은 이러한 사실이 전설이 되어 전해온 것.
고대 한국인들이 이동해간 곳 중의 하나가 고대 그리스.
[ 뒤통수가 비교적 덜 튀어나와서 비교적 둥그런 머리통]을
단두형(短頭型)이라 하는데
단두형(短頭型)은 동북아시아인, 중앙아시아인 에게서 주로 나타나고
유럽에서는 스위스 산악지대와 그리스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다.
공처럼 둥그런 모양은 [부피 당 표면적]이 작아서
열의 발산이 적어서 추운 지방에 살기 좋은 것이고
단두형(短頭型)은 빙하기 때 오랜 세월 동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주위에
고립되어 살던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
바이칼리안 (밝할인) <- 관련글
앞에서 다루었듯이 [바이칼리안(밝할인)]이 남하하여 황해대평원에 와서
당시 그곳 원주민과 만나서 [원조 한민족문명] 즉 [마 문명]이 생겨나고
그 문명은 세계 문명의 뿌리가 된다.
그 놀라운 문명은 황해에 바다물이 차는 1만2천년전~8천년전 사이에
세계로 퍼지게 된다.
세계 고대사학계에서 해결하고 싶은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원조 [아리안]이 도대체 어디서 왔냐는 것.
[아리아(알이안)]은 약 7천년전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나서
차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인도와 유럽에 [말(언어)]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학계는 [인도-유럽어]를 [아리안어 계통]으로 분류한다.
히틀러가 그토록 [아리아(알이안)]을 찾아 해맨 것도
[아리아(알이안)]이 전해준 문명이 독일 문명의 뿌리이기 때문.
세계적으로 단두형(短頭型)은 휘귀한 편인데
그 단두형(短頭型)의 분포를 보면
동북아시아 -> 중앙아시아 -> 유럽 일부 지역 등등
감이 오시는가.
지금 유럽인은 백인계통이 숫적으로 많아져서 보통 백인들이라 하지만
고대에 동북아에서 유럽으로 상당수가 건너가서 문명을 전했다.
[스톤헨지] 등 유럽에 있는 고대의 놀라운 유물들은
동북아 즉 [원조 한문명 ] 즉 [마 문명]에서 건너간 것이라 볼 수 밖에.
그리스 앞바다 즉 지중해는 1만2천년전에는 바다가 아니라 평야지대였다.
1만2천년전 이집트에 가서 나일강가에 대피라미드를 세운 고대 한국인들이
좀 더 가서 [지중해평원(지금의 지중해바다)]에서도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집트, 수메르, 그리스 등지에서 나타나는 고대 고도문명은
계승이 제대로 안되고 결국 맥이 끊어지고
나중에 다시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
[출처 - 과학동아 1997년 10월호]
대피라미드 건축의 비밀 - 돌의 무게 6백만t 이상
맹성렬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과정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정점에 위치한 기자 지역에
세계 최고(最古), 최대 규모이면서 가장 정밀한 석조 건축물이 우뚝 서있다.
주류 고고학계에서도 4천5백여년 전에 건축됐다고 인정하는 이 건축물이
과연 그 옛날 석기와 청동기만을 사용했을 미개인들이 만든 것일까?
많은 고고학자들은 당시가 절대왕권 체제로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시간을 무제한으로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피라미드의 건축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요점은 석기와 간단한 청동기 도구로 석회암을 채굴하고,
통나무와 지렛대, 그리고 윤활유를 사용해서 돌을 운반했으며,
완만한 경사로를 피라미드 상부까지 건설해서 돌을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언뜻 생각하기에 가능할 것 같아도
건축의 규모를 헤아려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사용된 돌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피라미드를 한변의 길이가 30cm인 정육면체 블록으로 쪼개면
지구 둘레의 3분의 2까지 늘어놓을 수 있다.
무게로 따지면 총 6백만t이 넘는다.
이정도 규모의 토목건축사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에 충분한 사회적 구조가 뒷받침됐음을 의미한다.
토목건축사업은 여러 기술과 산업들이 총집결돼 이루어지는 것으로
건축 당시 과학기술력의 전체적인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축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초첨단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대피라미드를 건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대피라미드 건축에 적용된 오차의 범위가
오늘 날의 건축물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 뺨치는 정밀성
예를 들어 오늘 날 가장 정밀한 건축물의 대표격인 파리 천문대와
그리니치 천문대는 각각 정확히 자오선과 일치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로 측정한 결과 각 천문대는 자오선 방향에 대해 6호분과 9호분씩
틀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대피라미드는 3호분 남짓 어긋나 있을 뿐이다.
또 오늘날 레이저빔을 이용한 초정밀 수준기(평면의 수평 정도를 측정하는 기계)로
건설되는 건물의 수준 오차는 전체 규격의 0.2% 남짓인데 비해
대피라미드는 전체 밑면적에서 겨우 0.03% 정도의 오차를 보여준다.
즉 대피라미드 건설에 적용된 기술과 기능이 오늘날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부 고고학자들은 당시 이집트인들의 기능적인 능력을 극찬하면서
그들이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건축의 정밀도가 전적으로 기능에만 의존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 당시에 매우 발달한 기술 수준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그들의 초인적인 기능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대피라미드가 건설될 때
오늘날의 정밀 측정기에 버금가는 기기가 사용됐음에 틀림 없다.
선왕조 시대에 제작된 돌항아리의 신비

이런 설명을 지지해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대피라미드 건설 수준에 어울리는 정밀가공 기술이 그것이다.
정밀가공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증거물은
기원전 4천년 경 선왕조 시대에 발견되는
돌항아리다.
주류 고고학자들은 왕조 형성기 이전이 부족 국가의 신석기 시대였으므로
당시 신석기 항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항아리에 적용된 기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항아리가 미개 문명의
뉘앙스를 풍기는 신석기 시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조시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돌항아리들은
현무암, 화강암, 섬록암과 같이 쇠보다 강한 암석을 깎아서 만든 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돌항아리들이 제례 의식을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특별히 제작한 수공업제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항아리의 수는 3만여개가 넘는다.
즉 그 옛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것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항아리가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고성능 모터가 동원돼야
돌항아리의 안팎 표면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항아리를 회전시키며 가공한 것이 틀림없음을 증명해주는
미세한 동심원 모양의 가공 흔적이 발견됐다.
항아리 제작에 선반이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이는 우리 인류의 기술사에 일대 지각 변동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발견이다.
선반 작업은 물체를 고속으로 회전시키면서 절삭 공구로 안팎을 깎아내는
공정이다.
하지만 현무암같이 쇠보다 단단한 돌을 절삭하는 일은 오늘날의 특수한 공구로도 불가능하다.
설령 그런 용도의 절삭 공구가 개발된다고 해도
공구와 물체 사이에 높은 압력을 걸어줘야 한다.
또 물체가 초고속으로 회전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이집트학 학자 플린더스 피트리는
이런 가공에 최소한 2t 이상의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고 추정했다.
오늘날 석재 가공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큰 압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압력을 공구로부터 받는 돌덩어리를 과연 초고속으로 회전시킬수 있을까.
이런 조건에 절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오늘날 기계 가공에 사용되는 고성능 모터같은 것이 필연적으로 요구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터는 오늘날처럼 전기에 의해 구동됐을까.
금도금의 수수께끼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뜨는 이집트 고고국의
초대국장으로 부임해 발굴작업을 지휘하던 중
기자 대피라미드 근처에서 금도금 장식물을 발견했다.
고대 세계에서 제작된 금도금 제품은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도금은 두텁고 불균일해 형편없는 수준을 보인다.
중세 연금술사들이 개발한 대표적인 금도금 방법은 아말감을 이용한 것이다.
금을 수은에 녹여 아말감을 만든 후
이를 주물 표면에 입히고 열로 수은을 증발시켜 금만 남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아무래도 금박의 두께가 두껍고 균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밀분석 결과 대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된 금도금 장식물은
전기 도금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얇은 두께와 광택을 지닌 것으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이집트 구왕국 시대에 이미 전기 도금이 이루어졌다는 말인가?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대피라미드의 환기창 안에서 발견된
철제판에서도 확인됐다.
이 철제판 역시 얇은 금도금이 돼있다.
사실 인류가 전기를 처음 사용한 것은
1800년 무렵 이탈리아 과학자 볼타가 전지를 발명하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이보다 2천년 전 이라크에서는
연금술사들이 진흙 항아리와 구리편, 철심, 아스팔트 등으로 구성된
간단한 형태의 전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에 전기가 사용됐다면,
이보다 더 이전에 전기가 사용되지 않았으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실제로 기원전 2천5백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식기는
오늘날 전기 도금한 것보다 더 얇고 윤기가 나는 금도금이 돼있다.
즉 인류는 문명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이미 전기를 사용해 금도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이런 기술은
아마도 이들 두 문명에 영향을 끼치고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초고대문명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 없다.
---------------------------------------------
위 글의 필자가 말하는 초고대 문명은
1만2천년전~8천년전 현 황해에 바다물이 들이차면서
세계로 퍼져나간 [원조 한문명]이라 본다.
아래 고대 그리스 기계를 학자들이 2100년 전 것이라 추정한 것은
별다른 근거가 없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전 것이라 본다.
-------------------------------------------------------------
[동아일보-2006.12.01]
 2100년 전 그리스의 천체 관측 기계인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을 컴퓨터로 복원한 모습(위).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30일 공개했다. 네이처는 현대적인 톱니바퀴 형태로 복원한 컴퓨터 그래픽(아래)도 제시했다. 톱니바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른쪽 아래의 막대가 달의 위치를 가리킨다. 사진 제공 네이처 |
 |
100여 년 전 그리스 안티키테라 지역 인근 해저 42m 지점에서 청동조각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고고학자인 발레리오스 스타이스 씨는 1902년 유물 가운데서 톱니바퀴들을 찾아냈지만
연구의 진전이 이뤄진 것은 한참 뒤였다.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따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이라고 불리게 된 2100년 전의 청동조각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30일 영국 카디프대의 천문학자 마이크 에드먼즈 박사가 주도한 ‘안티키테라 메커니즘’ 연구에서
이 기계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일식을 예고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당시로선 ‘천체 연구용 슈퍼컴퓨터’인 셈이다.
놀라운 대목은 이후 1000년간 이에 필적할 만한 장치가 발명되지 않았을 정도로 첨단장비였다는 점.
에드먼즈 팀은 3차원 X선 단층 촬영기술을 통해 이 기계가 37개의 톱니바퀴와 시계 모양의
2개 면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에드먼즈 팀은 이 기계가 4년마다 윤년을 계산하는 지구의 365일 공전주기를 정확히 알려줬다고 보았다.
윗부분의 눈금판은 19 태양년마다 7개월의
윤달을 두어 양력과 음력을 일치시킨 ‘메톤
주기’를,
아랫부분의 나선형 장치는 지표상의 동일 위치, 같은 시각에 비슷한 일식과 월식을 볼 수 있는 순환주기인 ‘사로스 주기’(약 18년)를 알려주기 때문.
네이처는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의 톱니바퀴 움직임 비율을 살펴보면
달이 지구와의 거리에 따라 변하는 공전속도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네이처는 이런 주장을 했던 당대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가 이 기계와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로마의 기세에 눌리던 기원전 150∼100년에 그리스인이 이런 기계를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
당시 그리스는 정확한 시간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어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12010115
-------------------------------------------------------------------------
고대 컴퓨터, 미스터리 풀렸다 |
|
[팝뉴스 2006-11-30 ] |
연구팀 “모나리자보다 더 가치 있는 유물이다”
지난 1901년 그리스 안티키테라에서 발견된 고대 기계 장치의 비밀이 연구 100년만에 풀렸다.
29일 과학 전문 잡지 네이처 및 뉴욕타임스 등이 영국, 그리스, 미국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안티키테라 기계 장치’라 이름 붙여진 이 유물이
달, 태양 등의 움직임을 계산,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천체 연구용 컴퓨터’라는 것.
이 장치는 고대 시대에 제작된 컴퓨터로 추정되어 왔는데,
영국 및 그리스 등 과학자들이 3차원 X 레이 판독기 등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분석 연구한 결과
이 장치가 정교하게 4년 마다 윤년을 계산에 넣는 '365일 달력'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월식과 일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주요 별자리들의 이동을 계산하는 별 달력 기능도 가지고 있는 '컴퓨터'로 파악된 것.
연구에 참여한 영국 카디프 대학의 천문학자 마이크 에드먼즈는
안티키테라 기계 장치가 놀랄만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유물이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다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 언론의 설명.
연구팀은 첨단 기술을 이용, 안티키테라 기계 장치의 원리와 모습을 컴퓨터를 통해 복원했는데,
이 장치가 37개의 톱니바퀴로 이뤄졌고 시계 모양을 한 두 개의 면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달과 별 그리고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문 연구용 컴퓨터’가 분명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
고대 그리스의 과학 기술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중요한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해외 언론은 이번 연구 결과를 보도하면서, 또 하나의 진귀한 고대 과학 기구도 언급했다.
바그다드 인근에서 발견된 그것은 14cm 높이의 ‘바그다드 배터리’.(사진 아래)
진흙으로 빚은 작은 그릇의 뚜껑은 아스팔트로 만들어져 있다.
2천 년이 넘은 과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용기에 액체 초(醋)를 채우고
금속관을 넣으면 1.1 볼트의 전기가 발생한다.
정확한 용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과학자들은 전기 도금을 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 그리스, 영국, 미국 합동 연구팀이 첨단 기술을 이용,
복원한 안티키테라 기계 장치와 바그다드 배터리)
최기윤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