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文字”, 그 失名으로 인한 오해
이처럼 고귀한 민족의 유산을 우리는 근 100여년 가까이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은 바르지 못한 이름 하나가 등장하면서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바로 “漢字”라는 이름인 것이다. 이의 등장 배경을 파악하고, 주변 삼국의 “漢字”라는 이름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살피고, 우리에게 끼친 영향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1)漢字라는 이름의 등장
“文字”는 고유한 이름임을 서두에서 밝힌바 있다. 그러나 “漢字”라는 이름이 대두되면서 “文字”는 자연스럽게 보통명사화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文字”의 창제 주역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기 시작하였고, 아울러 “文字” 본래의 의미도 급격하게 왜곡되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대한제국의 이후의 생존 학자들의 고증과 여러 기록물을 통해 “漢字”라는 이름이 생성된 근원을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여러 선생님들이나 노인들께 한자와 한문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쓰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파생된 한학,한시,한문학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가를 물어 조사해 보았다. 그 답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는 한문이라 하고 한자라 하는 것은 문자가 한나라에 이르러 그 완성을 이룬 까닭이라고 답하는 이가 있고, 둘째로는 잘 모르지만 어려서는 그런 말이 없었다고 대답하는 이가 있고, 셋째로는 일제가 이 나라를 강점하기 시작한 대한제국의 말기부터 문화적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우리 글인 正音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조선민족은 미개하여 문자도 없으니 일본의 가나를 익혀 문명을 개화하여야 한다는 교시를 강요하면서부터 한문, 한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대답한 이가 있고, 넷째로는 한글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의 지식인들은 이 “文字”를 통하여 불편 없이 “文字”생활을 영위함에 놀라 삼천리강토의 명산 대혈에 쇠말뚝을 박아대던 노력보다 더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 한문, 한자라는 어휘를 만들어 냈고 그에 따라 한학이며 한시.한문학이란 어휘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대답하는 이가 있었다.
다음으로 과연 “漢字”라는 이름은 어느 때부터 쓰인 것인가를 문헌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본인이 조사한 문헌으로는 서기1922년 4월에 유교경전강구소에서 발행한 유교경전 언역총서인 사서삼경의 번역 활자본이 그 처음이다.
논어의 集註大全은 先賢과 先儒께서 후학과
後生을 근심하시고 걱정하샤 섬상(纖祥)히 훈고(訓誥)하시고
明曉히 주석하셨스나 近日에 至하야는 新進이
漢文에 業을 專히 할 暇이 無하야 平常한 文義도
通하지 못하는 사람이 多하야 昔日의 섬상함이
전혀 未祥함이 되고 석일의 명효함이 전혀 難曉
함이 된 故로 朝鮮諺字로 譯解하야 아모조록
婦人과 유자(孺子)와 초동(樵童)과 목수(牧竪)까지라도
易知易解케 함이라
논어 집주대전의 범례 첫 대목이다. 유학자의 필독서인 사서삼경을 역해하면서 부인이며 유자며 초동과 목수까지도 쉽게 알고 쉽게 이해하도록 번역하였다는 말인데, 비로소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을 역해하였다고 하여 처음으로 “漢文”이라는 어휘가 보이고 있다. 아울러 범례 세 번째 대목에서 “漢字”라는 어휘가 드디어 보인다.
경문 급 자해, 훈두, 의해의 한자에 언자를
傍註하고 字義와 文義를 譯解할 時에 漢字로
방주하고 자의와 문의를 역해할 시에 한자로
成語된 것은 種種 漢字로 直書하고 諺字로 傍註
성어된 것은 종종 한자로 직서하고 언자로 방주
함은 漢諺字를 竝通케 함이라
함은 한언자를 병통케 함이라.
경문과 자해와 훈두와 의해의 모든 한자는 정음으로 그 소리를 곁에 적을 것이며, 역해의 부분도 한자를 적은 부분에 음을 달기로 한다고 한 것이다.
이로써 확연히 우리의 문헌에서 한자라는 이름과 한문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적어도 서기1922년 4월일 것이라 추정한다.
2) 주변국의 경우
한자라는 어휘가 쓰인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한 것이라 짐작해 볼 때 일
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더욱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선다. 뿐만 아
니라 같은 문화권내에 있는 대만과 중국의 경우를 같이 살펴본다면 더욱 극명
한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먼저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자신들의 國字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漢
字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16년 초판 발행으로부터 1939년 221판
발행본인 詳解漢和大字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책 제목에서부터 漢和라하
여 '支那と 日本 と '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水부 11劃 漢의 條에서 이와 관
련한 어휘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漢字: 支那の 文字 (國字の 對)
漢詩: 漢代の 詩
漢音: 漢字の 音
漢語: 支那本來の 言語
漢學: 漢文學に 同じ
漢籍: 漢代の 書物, 漢文で 書いてある 支那の書物,
からぶみ, 漢書
漢文學: 漢字漢文のとみかた 解釋組織 などについて硏究する
學文, 漢學
漢胡韓: 支那(漢), 蒙古(胡), 朝鮮(韓)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은 일찍이 지나에 대한 명칭으로 漢이라는 말
을 써오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반면 대만과 중국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다음은 대만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만에서 발행된 소형자전 사해(辭海)에는 漢
文이나 漢字라는 어휘가 실려 있지 않다.
다만 漢學이라는 어휘의 설명은 ‘訓誥之學, 日本人 稱中國的學術’이라 적고 있
다. 中文大辭典에서는 한문은 ‘漢代之文章’이라 적고 있을 뿐이며, 그 예로 ‘韓
文力量不如漢文, 漢文不如先秦戰國’이라 적고 있다. 당나라 韓愈의 문장역량이
漢代의 문장만 같지 못하고 漢代의 문장은 先秦戰國時代의 문장에 미치지 못한
다는 해석이다. 이것은 물론 유학의 사상적 함유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약
해졌다는 뜻이다. 漢字는 '漢族人文字也, 對蒙古文字以言.'이라 적고 그 출전은
元史兵誌에서 찾고 있다. '造蒙古漢字文冊而聞, 其總數蓋不可知也'라 하여 몽
고가 漢의 글자로 책을 만들었다는 소문인데 그 총수는 대개 알 수가 없다는 말
이다. 漢學에 대해서는 '後世謂訓誥之學曰 漢學 以之與宋學對稱' 이라 하였고
'日本人稱 中國學術曰漢學' 이라 적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훈고지학을 일러 한
학이라 말하고 또 일본인들이 중국의 학술을 한학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끝으로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거의 중문사전과 한화대사전을 종합해 놓은 느
낌이다. 중국의 한어대사전의 발간은 일본의 大漢和辭典, 1973년 대만의 중문
사전의 발행보다 거의 20여년이 지난 1990년에 발행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내용에 있어서는 대만과 거의 비슷하지만 추가적으
로 일본의 대한화사전의 영향을 받아 옮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오해의 실상 우리에게 新文物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일제의 의도적 전파를 통하여 고스란히 유입된 漢字와 그와 관련한 이름들이 등장하면서 여러 가지 오해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문화와 遺産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시련과 우리 文字정 책의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의 국어사전 편찬이나 字典편찬은 시 종 일본의 해설을 그대로 답습하게 됨으로 해서 더더욱 이런 현상을 증폭시키 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 “文字”가 “漢字”로 바뀌면서 생긴 오해를 분야별로 나누어 요약해 본다. 이는 앞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당위성을 제기하고 있 는 것이다. 특히 경전의 오역, 사전 및 자전류의 오류, 국문학상의 오류, 역사 인식의 오해, 문화 인식의 오해 등의 순서로 살펴본다. ① 經典의 오역
“文字”가 “漢字”라는 이름에 자리를 내주게 된 원인이 불순하기 때문에 경전의 해석에 있어서 단순히 “한자”라는 이름에 의한 오해에 그치지 않고 “文字”를 창 제한 주체에 대한 오해가 더 심각한 상태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먼저 孟子를 들 수 있다. 孟子 이루하의 기록을 해석자들이 기어이 동쪽 오랑캐 민족의 사람이라느니, 서쪽 오랑캐 민족의 사람이라느니 하는 군말을 덧붙이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역사상 舜 임금과 文王 때의 夷族은 동방의 覇者였다는 사실을 망각 한 채 植民史觀에 길들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論語 자한편의 경우도 같은 실수를 거듭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字解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九夷는 동녘 오랑캐니, 아홉 種類가 잇나니라. 또한 경문의 해석에서도 실수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或이 갈오대 더럽거니 엇지하리잇고. 子- 갈아샤대 군자-居하면 무슨 더러움이 잇스리오. 다음의 義解를 보면 거듭된 오류를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夫子-道를 행치 못하심으로써 아홉가지 種類 東녘 오랑캐에 居하고자 하심은 떼를 타시고 바다에 뜨고자 하시는 뜻이인다 엇던사름이 말하되 九夷가 더럽다 하거늘 孔子 말슴하시되 君子의 居한 바인즉 化하난 지라 엇지 더러움이 잇스리오 하심은 大抵 君子 거하면 中夏의 法度를 써서 오랑캐를 變하게 하이니 오랑캐가 비록 더러우나 化하야 禮儀의 나라가 될지라 무슨 더러움이 잇스리오. 이것은 夫子 義理를 證據하야 或人의 말을 對答하심이라. 줄곧 九夷를 오랑캐 정도로 이해시키려 하나 말의 뜻이 서로 통하지 못한다. 천하를 주유하고도 도를 펼만한 군주를 만나지 못해 탄식의 말씀으로 하신 말 씀인데 오히려 九夷에 살고자 하신 것이라 强辯을 하고 있으니 공자께서 이 사 실을 들으시면 더 기막힐 일이다. 이처럼 경전을 보는 시각을 굴절 시킴으로써 위대한 九夷 역사의 실체를 망각하게 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 ②辭典의 오류 1938년 학원 언어문학연구소 사전 연구실의 조선말사전, 1992년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1999년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 등 국어사전은 물론이고, 字典類에 있어서도 한결 같이 일본의 어휘풀이를 답습하고 있다. 슬기로웠던 우리 선인들께서는 일찍이 한족의 문자인 한자를 받아들여 사상을 창달하고 문화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1998년에 敎學社에서 漢韓大辭典을 발행하면서 그 서문에서 외치고 있는 내용 을 발췌한 대목이다. 위의 언해총서에서 한자라고 命名한 효과가 그 배로 나타 난 현실이다. 더욱 그 내용을 살피면 有口無言일 뿐이다. ‘漢’의 條를 찾아 그 설명을 살펴보면 漢字는 ‘漢語를 표기하는 중국의 고유글자’라고 설명하고 있 으며 漢文은 ‘漢語의 고문어법에 근거하여 한자로 표기한 글 또는 漢代의 문 장’이라고 적고 있다. 東亞出板社의 漢韓辭典에서는 漢字를 ‘중국고유의 문 자’라 적고 있고 漢文은 ‘중국의 문장. 중국의 문학, 漢字로 쓴 문장, 중국 漢代 의 문장이나 詩’ 등으로 적고 있다. 우리 국어 사전도 漢文은 ‘중국 고대의 어법 에 따라 한자로 씌어진 글, 한자로만 쓰여진 글’이라 적고 있으며 漢文學은 ‘中 國古代의 문학, 漢文을 연구하는 학문, 중국고전의 형식에 따른 漢文文學(漢 學)’이라 적고 있다. 다른 출판사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모두 이와 같다. ③국문학상의 오류 또한 우리 국어문학에 있어서도 文字라는 固有名詞가 보통명사로 전이되면서 그 자리를 한문과 한자라는 이름에 내어준 결과 참다운 국어 국문학의 기틀이 송두리째 왜곡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의 민족사는 상실과 왜곡의 늪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지경에 허덕이게 되었다. 특히 동양 三國이 다 “文字”에 대한 해석을 허신의 설문해자 서문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이나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적어 나타낸 일종의 부호”라고 풀이하면서, 결승문자, 설 형문자, 표의문자, 표음문자 등을 나열하고 있다. 원래 결승과 설형일 뿐 “文 字”를 붙일 이유가 없음에도 문자를 붙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訓民正音을 훈민정음문자라고 불러야 속이 시원할 판이니 애초에 잘못된 것임 에 분명하다. ④역사 인식의 오해 역사의 인식에 있어서는 많이들 자성하는 분위기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漢 字”라는 언어가 주는 충격은 여전하다. 漢四郡의 설치 지역이 분명 대륙임을 史 書들이 확인시켜 주고 있으나 여전히 한반도 내에서 우리역사를 인식하려는 자 세는 잘 고쳐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대륙에 펼쳐진 역사물이 모 두 漢族의 역사요, 중국의 역사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 근원을 천박하게 만들고 만다. ⑤문화 인식의 오해 우리의 전통문화가 文字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라는 이 름을 가지게 되면서 전부 중국의 문화유산인 것처럼 인지해 버리려는 경향이 다분하다. 家, 然, 器, 朝, 豆 등의 문자들이 나타내는 의미를 우리의 문화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문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소리(語音)으로 文字의 뜻을 형성시키고 있음도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삐침)의 활용을 통해 의미를 형성시켜 보면 더욱 신기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여러 오류와 오해뿐만 아니라 더 많은 측면의 오해를 불러오고 있는 것 은 결국 일제가 행한 문화 침탈의 오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측면의 오해를 불식시킬 대 전제가 필요하다.
4. 맺음말
21世紀는 새로운 轉換의 시대요, 民族本然의 特色이 尊重되는 社會이다. 世界 는 한 집안이 되고 그 속에서 民族마다의 장점으로 역할을 修行해 가는 相生의 時代이다. 이런 새로운 천년을 살아가야하는 우리는 잘못 인식한 이름들로부터 자유로워 질 필요가 있다. 正名(바른 이름)의 인식을 통하여 모든 사실의 진위를 참되게 볼 수 있는 智慧를 所有하여야 한다. 본고에서는 文字의 創製는 東方民族의 공동노력의 소산이며 특히 夷族이 主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또한 夷族은 바로 우리 선조들이고, 夷族 들의 主 활동무대는 옛 舜임금 이하 殷나라 때라는 것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대륙의 구분을 아홉으로 나누어 九夷라 하였으니 우리의 역사 영역 을 반도 내에서만 생각함으로 해서 생겨나는 오류를 막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 한 과제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漢字”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言語는 왜곡된 歷史를 낳고 왜곡된 문화 인식을 낳아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음도 지 적하였다. 이를 바르게 이름 지어 주는 것은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보는 단초가 될 것이며, 우리의 훌륭했던 祖上들을 바로 보고, 우리의 文化를 바로 세우는 것이 될 것이다. 잘못 이름을 바꾼 “漢字”라는 이름을 본래의 이름인 "文字"로 바꿔 부르기 어색 하다면 우리의 소리글이 한글(韓契)이요 우리의 뜻글이 한자(韓字)라는 이름을 붙이되, 漢醫學으로 왜곡됐던 이름을 韓醫學으로 바꿔 정의했듯이, 진실에 맞 는 정의가 필요하다. 본래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여러 가지 방편을 마 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威大한 우리의 遺産인 소리글자인 한글(韓契)과 뜻글자인 韓字를 소유하고 있다. 새는 두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고, 수레는 두 바퀴가 있 어야 끌고 달리게 할 수 있듯이 우리의 소리글과 뜻글은 유구한 전통과 새로운 미래를 조화롭게 할 최고의 言語요 글자다. 이 세계 어디에도 완벽한 글(契)이 없다. 오직 우리만이 완벽한 두 가지 글자(契字)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21세 기, 문화의 세기에 우리가 世上의 主人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參考文獻 01. 金承璨, 韓國上古文學硏究, 第一文化社, 1978. 02. 白影先生10週忌追慕論文集刊行委員會, 韓國古典詩歌作品論, 集文堂, 1995. 03. 원형갑, 詩經과 性, 한림원, 1994. 04. 李家源, 韓國漢文學史, 民衆書館, 1971. 05. 鄭炳昱, 韓國古典詩歌論, 新舊文化社, 1994. 06.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주)지식산업사. 1994. 07. 三國史記 08. 三國遺事 09. 三一神誥 10. 論語 11. 孟子 12. 詩經 13. 周易 14. 說文解字 15. 中文大辭典 16. 漢語大辭典 17. 漢和大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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