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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語와 漢字

동방존자 2010. 9. 8. 17:31

 

 

 

漢語와 漢字

中國語와 漢語

사실 중국에서는 中國語라고 하지 않고 中國話(쭝꾸오화)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中國語라는 것은 일본식 용어인데 우리가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쭝꾸오화(中國話)라고 했었는데 60년대 이후에 中國話라고 하면

모순이 있다고 하여 漢語로 바꿉니다. 지금 중국이 한족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죠.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선족, 몽고, 티베트, 위구르,
장족, 묘족 등 많아요. 그 소수민족들이 다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그 중에서 두 소수민족만 자기 언어를 잃어버리고 한어를 쓰고 있는데 回族과

滿洲族입니다. 그래서 53개의 소수민족이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어 53개의

언어가 중국 안에서 쓰이고 있지요. 청조는 만주족이 세운 왕조인데 지금은 

언어도 死語가 되어 버렸어요. 제가 10년전에 중국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니까

70명 정도가 만주어를 하고 있는데 그것도 70세 이상 노인들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10년 이상 지났기 때문에 아마 아무도 만주어를 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53개의 소수민족들이 자기의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중국화라고 하면

모호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확하게 漢語라고 해야된다 해서 모든 책에 있는

이름도 漢語로 바꾸었어요.

中國 境內의 언어

중국 경내에서 쓰이는 언어는 54개 민족 언어겠죠.

그것을 語族 별로 나누어 보면 5개의 語族으로

세계 전체 語族에 속하는 언어가 다 중국 안에서 쓰이고 있어요.

Sino-Tibetan language family :

漢藏語族(漢語, 藏緬Tibeto-Burman, 個台語族Kam-Tai)


Altaic language family :

苗瑤語族 (돌궐어, 몽고어, 퉁구스어)

한국과 일본어는 퉁구스 언어에 속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 아직도 논란이 많아요.

학자에 따라서 속한다 하고, 어떤 학자들은 어느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언어라고 합니다

Austroasiatic language family : 南亞語族(Mong-khmer, 월남어)
Austronesian language family : 南嶋語族(Formosan, 대만의 高山語族)
Indo-Europian language family : 인도이란어족(Tajik, Tochaian 龜玆 서역지방의 死語)

중국의 인구가 12억이라고 하거든요. 이 중에 94%가 한족이고 6%정도가 소수민족으로

사실 6%라 하면 굉장히 적은 것으로 생각되죠. 12억의 6%이면 7, 8천 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아요. 이것도 10년전에 통계인데 100만명이상 되는 소수민족이 15족으로

거기에 조선족이 낍니다. 중국 전체의 60%지역을 소수민족이 차지하고 있어요.

漢語의 역사

B.C.1300년의 甲骨文으로 漢語가 어떠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先秦은 秦이전 시대이고 秦始皇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것은 B.C.221년입니다.

중국 고대왕조는 夏 殷 周죠. 殷代는 B.C.1700∼1100년까지 보고 있어요.
周나라는 西周, 東周가 있고, 東周는 春秋 戰國으로 나뉘죠.

그리고 B.C.221년에 秦나라가 세워지고 周나라가 막을 내리지요.

先秦시대는 口語와 文語의 차이를 알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대할 수 있는 문헌(고전)들이 있죠.

論語와 孟子는 先秦시대 후반기로 춘추시대의 문헌들입니다.

학자들은 그 당시 口語라고 보고 있어요.

孟子에서 "梁惠王曰" 이렇게 되어 있죠. 직접화법으로 인용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口語라고 보고 있어요. 論語도 마찬가지죠(子曰).

이상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통합된 형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漢代에는 口語와 文語가 굉장히 사이가 벌어진 시대라고 보고 있어요.

漢代에 유교가 국교로 됐죠. 漢代 다음에는 위진남북조가 있고,

唐代에는 소설들이 많이 나오는데 白話文으로 씁니다.

漢代의 文語는 唐代에 白話文과 文言으로 나뉩니다.

唐代는 전기소설이라고 하고, 宋代는 화본소설이라고 하는데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던 대본으로 이루어진 소설로 통속적인 내용과 문체를 白話文이라 해요.

이것이 元代로 가면 희곡이 되고, 明, 淸代에는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 등
4대 기서가 白話文으로 쓰여집니다.

1919년에 五四문화운동이 일어나는 데 이 때의 백화운동이라는 것은 언문일치
하자는 것입니다. 북경대학 학자들이 앞장서서 백화운동을 벌였어요.

그 사람들이 내건 슬로건이 " "으로 입에서 말하는대로 쓰자는 슬로건이죠.

백화운동은 굉장히 성공적이죠. 그래서 지금까지 내려오는데 언문일치는 안되요.

말하는대로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통 쓰지 않거든요.

그래서 현대는 口語와 書面語로 나뉩니다.

우리말로 하면 입말글말이라 하는데 저는 차이가 많지 않아 나누지않고 붙여서 써요.

漢語의 유형적 특징

1. 단음절 : 이것은 현대 중국어에는 딱 들어맞지 않는 정의거든요.

단음절이라는 것은 음절 하나가 한 낱말이 되는 것이죠.

지금의 현대어로 오면 두글자(두음절) 낱말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단음절어라고 하면 틀렸다고 학자들이 지적을 많이 하는데

저는 "단음절형태소어"라고 바꾸었어요.

형태소라는 것은 의미를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라고 언어학에서 배우죠.

한음절이 단음절인데 한음절속에 의미가 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면 {論語}[學而]를 보면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가 있다.

이것 하나하나가 낱말이에요. 그래서 단음절어다.

그런데 현대어(북경어)는 그렇게 말 안해요.

지금의 북경어로 말하면  "學習而且時常練習(這個), --- "이다.

두글자 낱말이 많아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글자가 뜻을 가지고 있어요.

學習하면 學과 習의 조합이거든요.

그러니까 쉬에(學)도 형태소, 시(習)도 형태소이기 때문에 단음절 형태소어다.

그냥 단음절어다 해도 그렇게 틀리지는 않아요.

2. 성조 : 성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한장어족의 공통적인 특징이에요.

만 아니라 남아어족도 성조를 가지고 있어요. 성조가 중국어에서는 아주 중요하죠.

왜냐면 성조가 다르면 의미가 달라져요. 그래서 음소적이라 애기했고 그리고 의미

변별 작용이 있어요. 한어속에도 방언들이 많이 있죠. 그것을 크게 묶어서

대개 7대 방언으로 나누어요.

북경어(지금 표준어)는 북방 방언속에 속하는 언어로 성조가 몇 개죠? "4개입니다."

북방 방언 지역에 속하는 2,3개 지역이 성조가 3개인 데가 있어요.

북방 방언 지역은 양자강 이북지방 전체로 동북지방과 서남쪽의 귀주, 운남성까지 포함합니다.

北方방언 :
吳방언 : 양자강 어구, 상해, 소주, 강소성, 절강성 유역.
湘방언 : 양자강 중류.
..방언 : 강서성.
客家방언 : 한족인데 황소의 난 등 당대부터 청대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서 난을 피해서

    남방으로 이주한 집단인데 보수적입니다. 대개 남쪽의 광동성, 광서성에 모여서 살고

    말도 방언을 보존하고 있어요.
越방언 : 광동성, 광서성의 광동말.
..방언 : 지금의 대만말, 복건성 사람들을 명말에 鄭成功이라는 사람이 대만으로 데려 갔었다.

여기서 민 월 상방언은 그 지역의 강 이름을 따서 지은 거예요.

성조는 북방 방언은 3∼5개 사이이고 10개까지 있는 방언이 있어요.

광동말은 성조가 9개입니다. 광서성의 어느 지역은 10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조를 잘 구분하지 않으면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아요.

예를 들면 ma( 제1성 5 5, 麻 제2성 3 5, 馬 제3성 214, 罵 제4성 5 1)

3. 複聲母의 소실 : 복성모라는 것은 중국용어이고 우리말로 하면 어두자음 군입니다.

뭐냐면 한 음절에서 제일 앞에 자음이 두개 겹친 것이다. 지금 현대 중국어에는 없어요.

그런데 상고음에는 있었거든요. 맹자 시대에는 복성모가 있었어요.

다른 한장어에 속하는 것도 한어처럼 소실이 되었는데 알타이어는 본래부터 없어요.

우리말도 여기에 속한다고 하면 복성모가 없죠.

그러나 남아어나 한장어에 속하는 묘어에는 복성모가 있다.

4. 고립어 : 중국어는 고립어고 한국어는 교착어이고 인도유러피언어는 굴절어다.

고립어의 특징은 어미 변화는 없고 문법적인 관계가 어순으로 다 결정이 됩니다.

5. 어순 : 중국어에서 어순은 SVO(주어+동사+목적어)로 되어 있죠.

한장어족에 속하는 티베트어, 버어마어는 중국어하고 같아야 할텐데 알타이어처럼

SOV 입니다.

6. 형용사 + 명사 : 수식어가 피수식어 앞에 옵니다.

우리말도 그렇지요. "좋은 사람" 중국어도 마찬가지로 "好人"이죠.

그래서 알타이어 계통하고 똑같아요. 그런데 티베트어, 타이어, 동남아어, 월남어 등은

거꾸로 수식어가 뒤에 오고 피수식어가 먼저 옵니다.

광동, 광서 지방을 越이라고 했죠. 춘추전국시대의 越나라는 양자강 이남에 살던 종족들로

한대의 한무제에 정벌을 당하여 밑으로 월남지역까지 내려 갑니다.

그래서 나라 이름이 비에트남(南越) 입니다.

7. 量詞 : 수사, 지시사 뒤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 사람" 이렇게 쓰면 되는데 중국어는 가운데에 양사가 있어야 돼요(這個人).

個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셀 때 쓰는 양사입니다.

지시사뿐만 아니라 수사가 올 때도 사이에 양사가 있어야 됩니다(한 사람, 一個人).

우리 말에서도 한 개, (책) 한 권, (소) 한 두, (말) 한 필 등은 중국어의 영향으로

한국어, 일본어가 양사를 쓰는데 한국어의 본래 특징은 아닙니다.

고문에 보면 양사가 별로 없어요.

현대어로 오면서 생긴 것인데 지금은 거꾸로 점점 없어지는 추세이고

꺼(個)로 통합되는 추세입니다.

중국어는 지역적으로는 중간에 위치한다.

복성모의 소실은 동남아어와는 상반되고 알타이어 쪽이죠.

어순은 동남아어와는 같고 티베트어, 버어마어, 알타이어와는 반대죠.

수식어는 알타이어와는 같고 티베트어, 타이어, 동남아어, 월남어와는 반대죠.

이런 것을 볼때 유형적으로도 한어가 중간의 위치에 있어요.

이것을 중국 학자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인 학자 Jerry Norman이 이런 설을 냈어요.

중국어 자체가 주변 언어들에게 영향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고 쌍방적이다. 주변 언어들에게서도 끊임없이 영향을 받았다.

가장 오래 된 자료는 갑골문이죠. 갑골문을 보면 여전히 SVO로 되어 있어요.

이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풀었느냐 하면 ,

"역사 이전 시대에 한어는 SOV였는데 남방의 영향으로 SVO가 되었다."

이것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요.

漢語와 주변 언어의 접촉과 영향

揚子江 이북하고 이남의 차이점이 뭐예요?

揚子江 이북 지역은 이름이 河로 되어 있지요 (黃河, 遼河 등).

揚子江 이남 지역은 이름이 江으로 되어 있어요 (淸江, 烏江 등).


이것도 제이 노르만이 최초로 낸 설이거든요.

江과 河라는 낱말이 중국 고유의 낱말이 아니다.

江이라는 것은 남아어에서 온 것이고,

河라는 것은 알타이어에서 온 것이다. 라고  주장을 했어요.


증거를 들어 보면 江의 상고음은 Krung이고

 Mong-khmer어족에서는 Krong, Karung이고 타이어는 Klong, khroang이다.

河는 선진 고음이 Gar이고 몽고음은 Gool입니다. 그래서 몽고에서 온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그리고 갑골문에 이라는 글자가 한번도 안 보입니다.

서로 다른 글자가 5천 여 자가 발굴이 되었는데

지금 의미를 확실히 아는 것은 천 자 밖에 안되요.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은 서주시대에 많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江이 한번밖에 나온 적이 없어요.

갑골문 금문의 시대는 황하 유역 중심이죠. 북방 왕조라서 江이 보이지 않아요.

시경이 주대에 성립이 된 것인데 그 속에도 河가 많이 보이는데 江은 9번 밖에

보이지 않아요.  305편이나 되는데 5개의 詩 속에 9번이 보인다는 것은 굉장히

적은 수거든요.

漢字

漢字는 形 音 義로 되어 있다. 字形이 있고 음이 있고 뜻이 있어요.

자형(글자)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이 文字學이고

한자의 음을 연구하는 것이 音韻學이고

한자의 뜻을 연구하는 것이 訓 學이다.

文字의 기원

한자의 기원에 대해서 옛날 사람들도 의문을 갖었던 모양이죠.

여러 전설적인 얘기들이 있어요.

상고에 성인이 새끼 매듭을 지어서 정치를 했는데 후대에 성인이 글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었는데 팔괘가 바로 초의 한자다, 이런 얘기도 있고.


또 한가지는 倉詰(창힐)이라는 사람이 作書(書라는 것은 책이 아니고 글자이다)

했다는 것이다.

창힐이라는 사람은 황제의 사관으로 倉詰作書라는 것은 전국시대에 법가에서 나온 얘기거든요. 진시황이 법가사상에 힘입어서 통일을 했잖아요.

진시황의 재상인 李斯는 법가입니다. 이사는 {倉詰篇}이라는 字典(글자 교본)을 썼고

小篆으로 개량합니다. 지금까지 전하지 않다가 20세기에 들어와 죽간으로 잔권이 남아 있어요.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선전한 느낌이 들어요.

이러한 설이 있는데 한 사람이 어떻게 한자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하고 학자들은 이것을 반대하죠.

仰韶 西安 半坡는 중국의 고대문화 유적지입니다.

半坡에서 陶器들을 많이 발굴했거든요.

그것을 탄소측정으로 연대를 해 보니까 B.C.4000년경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기호가 새겨져 있더란 말이죠. 서로 다른 기호가 22개가 나왔어요.
학자들이 갑골문자의 형태와 비교를 해서 추측을 하는 거예요.

I(1) II(2) III(3) IIII(4) ×(5) +(7)
(玉 옥꾸러미를 꿴 모양) ィ(示 제사지내는 제단으로 봄)

"이것이 최초의 고문자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신중한 학자는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고 합니다. 半坡의 陶器文字를 줄여서 陶文이라고 합니다.
文字는 문장이 아니고 글자입니다.

文은 하나의 구조로 된 먼저 생긴 글자들이거든요.

字는 2개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으로 文이 더 원형입니다.

陶文, 甲骨文, 金文에서 文은 문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산동지역의 고대문화를 大汶口라고 하는데

그 지역에서 발굴된 것은 B.C.250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4글자가 발굴됐는데 그 중에 두 글자가 (炅) (炅山)이다.

炅은 해가 빛을 발하는 것이죠. 그래서 햇빛이라는 뜻이에요.

갑골문에서 山과 火는 모양이 유사해요.

이 모양은 玉器(옥에 새겨짐)에도 똑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문자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탕란이라는 문자학자가 이것을 최초의 문자라고 주장을 해요.


하남성에 있는 二里頭 문화유적은 대개 夏나라말에서 殷나라초까지

B.C.1900∼1600년으로 추정이 돼요.

여기에서도 20개의 문자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제가 4개를 뽑았어요(...).

이것은 정말 문자 같지요. 이것을 갑골문과 비교를 했어요.

俎(제사 지낼 때에 고기 담는 그릇)는 갑골문에서  로 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부호가 고기가 담겨있는 모양입니다. 

두번째는 우물 정자이고

세번째는 또 우자인데  손 모양이에요. (왼손) (오른손)은 左 右가 됩니다.

네번째는 죽은 사자(死)로 관속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죠.

갑골문을 보면 사람이 옆으로 누운 모양인 데

二里頭 문화유적지에서 나온 모양은 사람이 거꾸로 누웠어요.

甲骨文은 연대가 B.C.1300∼1027년으로

273년 동안에 만들어진 갑골을 발굴한 것입니다.  

갑골문이 나온 곳은 하남성 安陽 小屯이라는 곳인데 은나라의 마지막 수도예요.

盤庚이라는 왕이 B.C.1300년에 안양으로 천도를 했거든요.

마지막 왕인 帝辛까지 12왕 시대에 쓰여진 갑골문이 발굴이 된 것이죠.

이러한 상황이 사마천의 사기와 완전히 부합이 돼요.

그 이전의 역사도 갑골문의 기록과 약간의 오차 이외는 완전히 똑같다는 것이 불가사의해요.

사마천의 사기가 B.C. 97년에 나온 것인데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갑골문을 보면 붓으로 쓰인 자취(빨간색)가 보여요.

붓으로 먼저 쓰고 나서 칼같은 도구로 새긴 것이거든요.

거북이의 배나 등의 껍질을 사용했는데 배껍질을 더 많이 썼습니다.

은 소의 견갑골을 사용했는데 거의 占卜기록이에요.

사사로운 일부터 국가대사까지 점으로 정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내일 비가 올까 안올까, 간지로 날짜를 기록하고 무슨 일에 점복관 누가 점을 치는데

왕이 그 점에 대해서 결과가 좋다고 나왔다.

어떤 것은 정말 실현이 되었느냐 이런 것까지 기록이 있어요.

갑골문이 완전하게 나온 것은 4개밖에 안되고 다른 것은 다 파편으로 나왔어요.

어느 오랑캐 나라를 칠려고 하는데 언제 가는 것이 좋겠느냐.

포로를 30명 잡았는데 죽이는게 좋겠는가 등 내용이 다양해요.

갑골문에서 붓 필(筆)자는 나중에 자료를 나타내는 대나무(竹) 변이 위에 붙은 거예요.

본래는 聿자는 갑골문에서 보면 붓을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

그러니까 은대에 붓을 사용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冊은 그 모양이 죽간을 묶은 모양이에요( ).

갑골문과 청동기는 오래 보존이 됩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금방 썩어요.

그래서 지금 발굴된 것 중에서 전국시대 楚나라의 죽간이 발굴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대개는 한대 이후입니다.

典자는 책을 두손으로 받친 모양이에요( ).

"書於竹帛"이라는 말은 竹과 帛에 쓴다는 것이죠.

이것은 묵자에 나온 말인데 중국학자가 영문으로
"Written on Bamboo and Silk"란 제목을 썼어요.

고대의 書史인데 글자, 글자 쓰는 도구 등 역사를 영어로 쓴 것입니다.

帛이라는 것은 흰 명주로 귀하기 때문에 帛書는 적어요.

그래서 대나무가 보편적으로 쓰였습니다.

帛書는 전국시대의 초나라 지방에서 발굴이 되었어요.

이것을 책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있는 데 {楚帛書}입니다.

{맹자}에는 초나라의 문화가 낮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문화가 굉장히 발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尙書}[多士]에 인용한 것은

주공이 은나라를 정복하고 나서 은나라 유민들에게 훈시하는 말이거든요.

 "惟爾知, 惟殷先人有典有冊, 殷革夏命."

"그대들이 알건대 은나라 선조들이 전이 있고 책이 있어서

은나라가 하나라의 명을 바꿀 수 있었다."

이것은 은대에 책과 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갑골문이 있었다는 것은 공자도 몰랐어요.


{論語}[八佾]을 보면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五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하나라의 예를 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夏나라의 유민들에게서는 증명을 할 수 없다

(杞인들은 하나라의 문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죠.

피정복민에 대해서 조롱하는 전통이 있나봐요.

기우라는 말은 하늘이 무너질까봐 두려워한다는 애기다).

은나라의 예를 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은나라의 유민들에게서는 증명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얘기 못하죠. 갑골문을 발굴했거든요. 그런데 공자는 한탄을 했어요).

문헌이 있다면 내가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杞(하나라의 유민들), 宋(은나라 유민들, 벼가 빨리 자라라고 벼를 뽑아 놓았더니

다 죽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조롱하는 것이죠)

1899년에 북경의 훈련대신이었던 王懿榮은 분석학에 관심이 있어 연구를 했던 사람인데

하루는 아파서 하인을 시켜 북경성 밖의 다린당에 가서 한약을 지어오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약 봉지를 펴보니까 뼈 조각이 있었어요. 그것은 龍骨이라는 한약재로 갈아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갈리지 않아서 조각이 남아 있는데 기호가 새겨져 있었어요. 그래서 알아 본 것이죠.

바로 하남성 안양 소둔촌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갑골문이 비싼 값으로 팔리니까 서부개척사에서 금을 캐듯이 하여

외국에도 많이 가 있어요.

王懿榮이라는 사람은 1900년에 우물에 빠져서 자살을 했어요.

왜냐면 훈련대신이었는데 의화단 사건으로 인하여 책임을 지고 자살을 했고,

이 사람 아들이 골동품을 많이 수집했는데 빚을 지니까 팔았어요.

갑골문 조각은 어떤 학자에게 팔았는데 탁본해서 수록을 했어요.

그래서 1903년에 처음 나옵니다.

商代의 중기로 추정되는 청동기의 명문(金文)이 발견되었거든요.

그러나 商代의 것은 글자가 한두글자 정도이고 西周시대의 청동기에는 글자가 많아요.
그래서 보통 말할때 은대의 갑골문, 주대의 금문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갑골문은 5천 자 정도 나왔다고 했는데 금문은 3700 여 자 정도로 글자는 적지만

해독은 많이 되었는데 2천 자 정도입니다.


한자의 변화를 볼 때 금문 다음에 오는 것이 大篆인데

이것은 진시황이 통일을 하기 이전에 춘추전국시대에 쓰던 문자이고

진시황이 통일을 한 다음에 李斯가 大篆을 기초로 해서 고친 것이 小篆입니다.

진나라가 6국을 통일하면서 문자도 통일을 하고, 수레바퀴의 폭도 통일을 하고,

도량형도 통일을 합니다.


한대에는 隸書가 표준이 되었는데 예서는 한대에 생긴 것은 아니고

진시황때에 하급관리들 사이에서 실용성 때문에 이미 생겼어요.

隸라는 것은 고용됐다는 뜻이에요.


楷書는 위진시대의 표준 서체로 쓰기 시작한 것인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내려옵니다.

楷라는 것은 모범적이다는 뜻입니다. 1958년부터 초안을 해서 64년에 간자체가 나옵니다.


行書는 필기체(흘림체)이고,  

草書는 많이 흘린 것이고 , 草書중에서 아주 많이 흘린 것을 狂書라고 합니다.

音韻

현대 중국어의 音節구조

聲調는 音節 전체에 걸리는 것으로 보고, 音節을 나누어 보면

聲母는 제일 앞에 나오는 자음이고 한 음절에서 聲母를 뺀 나머지 부분을 韻母라 한다.

韻母는 介音母音 韻尾가 있습니다. 母音과 韻尾를 합쳐서 韻이라고 하거든요.

두보나 이백의 시를 보면 무슨 韻이다 하죠.

이 두가지만 보는 것으로 개음은 상관 없어요.

a(阿), ia(牙), ta(他), jia(家) 모두 韻이 될 수가 있어요.

ai(愛), uai(外), kuai(快)가 한 韻이죠.

形聲

先秦古音을 연구하는 자료로 쓰는 것이 押韻과 形聲입니다.

상형, 지사, 회의, 형성, 가차, 전주 중에서 形聲은 어떻게 구성된 것이냐?

文字에서 文은 단체자이고 字는 합체자라고 했는데

形聲이라는 것은 합체자입니다.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 부분은 뜻을 나타내고 다른 한 부분은 음을 나타내는 구조가 형성자이고

음운학에서는

이것을 소리가 조화되는 글자들이라는 뜻에서 楷聲이라고 해요.

또한 뜻을 나타내는 부분을 形符(意符)라고 하고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을 聲符(音符)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工(聲符) : 功 功 空 貢 江 - 工은 聲符(소리를 나타내는 부분)로

工이 들어가 있는 글자가 다 공입니다. 그런데 제일 끝에 있는 江은 아니죠.

상고시대의 선진고음에서는 工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한자음으로 공과 강은 비슷하죠.

지금 한자는 6만 자가 넘는다고 보거든요.

대개 지식인들이 만 자 정도 아는 것으로 되어 있고,

중국에서 상용자를 3700자를 정하고 차상용자를 3000자 정하여

6700자를 보급을 시켰습니다.

현대의 한자는 90%이상이 형성자로 되어 있어요.

옛날에는 적었어요. 갑골문은 형성자가 27%입니다.


후한 (AD100년)에 許愼이 쓴 {설문해자}는 최초의 문자 분석서로

형성자가 80%인데 후에 계속 늘어서 90% 이상 보이는데 서양에서 들어오는

외래어는 다 형성자로 되어 있고 원소 기호 이름도 다 형성자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행이에요. 왜냐면 한쪽 부분을 보고 대강 맞힐 수 있거든요.

중국에서 문인들이 "讀字讀半邊"이라 하는데 글자를 읽을 때 반변만 읽는다는 뜻은

聲符만 읽는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이러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경종의 뜻으로 쓰는

거예요.

도올) 형성자가 90% 정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글자는 상형문자라든지

소리 글에 대해서 뜻 글이다  이런 식의 상투적인 규정이 위험하다는 것이죠.

한자가 만들어진 원리가 성부(소리)를 중심으로 해서 조합된 것이라고 할 적에

상형이나 뜻 글이라는 말로서만 규정해 버릴 수 없는 요소가 많은 데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역시 사운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소리의 연구를 통해서

항상 한자를 접근해 가는 시각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押韻

詩經에는 305篇이 있는데 5篇만 빼고는 다 韻이 있어요. 押韻은 운을 밟는다는 뜻이죠. 

300篇이 古音 연구로 가장 중요한 자료예요. 같은 운끼리 묶어서 분류를 하면 22部입니다.

22개의 다른 운들이 시경에 나타나는 것이죠.

운으로 뭐를 알 수 있어요?  같은 운에 속하면 母音과 韻尾가 같죠.

그러나 지금 介音하고 聲母는 몰라요. 형성자는 聲母와 韻母가 같습니다.

鄭風은 주나라때의 북방에 정이라는 제후국에서 불렸던 민가를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 정풍에서 제일 끝에 있는 시입니다.

朱熹는 {시집전}이라는 주석을 달았는데 정풍에 대해서 淫時라고 했어요.

정풍은 39편중에서 5/7가 음시인데 다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다(女惑男).

위풍은 1/4가 음시인데 이것은 거꾸로 남자가 여자를 즐기는 것이다.

정풍 溱洧二章中 一章

溱與洧, 方渙渙(hwan)兮.
士與女, 方秉蘭(kjan)兮. (元部)
女曰: 觀乎(gwag).
士曰: 旣且(tsjag).
且往觀乎(gwag). (魚部)
洧之外, 洵干且樂(lakw).
士與女, 伊其相謔(hrjakw).
贈之以勺藥(ngrjakw). (宵部)

진수와 유수강물, 바야흐로 넘실넘실.
사내와 계집, 손과 손에 난초를.
계집: "은근히, 가보자?"
사내: "눈치없이, 가봤는데."
우리 그래두 가보자!
유수밖 저 건너 정말 너르고 놀기좋아.
사내와 계집, 그렇구 그렇게 서로 즐겼네.
영원히 변치말자 작약을 주고 받네.

方渙渙(방환환) : 3월 3짓날 남여가 물가에 나와서 만나는 거죠.

   겨울에 얼었던 물들이 녹아서 가득 찰랑찰랑 차 있는 모양이다.
士(사) : 미혼 남자, 사내.
且往觀乎에서 且는 "그래두"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洵(순) : 정말.
간(간) : 너르고.
洵∼且∼ : ∼하고 ∼하다.
伊其(이기) : 어조사, 제 생각에는 "그렇구 그렇게"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相謔(상학) : 서로 즐기다.
贈(증) : 주다.
之(지) : 에게.
以(이) : ∼으로써.

渙(hwan), 蘭(kjan)에서 운이 an으로 똑같죠. 이것은 22部중에서 元部입니다.

乎(gwag), 且(tsiag)는 魚部이고 樂(lakw), 謔(hrjakw), 藥(ngrjakw)은

宵部입니다.

최초로 중국의 음운학을 연구한 사람은 스웨덴 학자로 버나드 칼그렌입니다.

上古音 체계라는 것은 가상 체계예요. 현대 중국의 여러 방언들로부터 거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음의 변화의 규칙이 있거든요. 그 규칙을 재구성해서 올라갑니다.

가장 기본적인 틀은 현대 방언이죠.

漢字의 傳來

중국 음운학 연구의 자료로 쓰는 것은 한국, 일본, 월남의 한자음인데 그것이

언제 전래되고 어느 지역의 음이 전래되었는가를 연구합니다.

한국은 漢四郡이 B.C.108년에 설치가 되면서 한자가 전래되었을거라고 가정하며,

백제 고흥의 書紀(369?)가 한자로 쓰여졌고, 광개토대왕비(414)가 한자로 되어 있다.
신라의 지증왕(500)이 중국의 군현제를 도입했고 麻立干을 王으로 고쳤고

8세기에는 唐律을 쓰고 모든 지명을 한자로 바꾸었다.

한국에 한자음이 언제 들어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이것에 대해서 칼그렌이 당대의 長安의 음이 6,7세기에 들어온 것이다.

일본의 아리사카 히데오는 10세기에 송대의 수도가 하남성의 개봉이었는데 그 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라고 설이 많이 달라집니다.

한자음의 음을 보면 중국의 六朝이전의 고대음을 반영하는 것도 소수 보이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전래되는 시기와 지역이 정확해요.

6,7세기에는 南方六朝, 백제, 遣隋使를 통해서 南朝音이 들어왔는데 吳音이라고 하고,

7,8세기에는 遣唐使, 유학승을 통해서 長安音이 들어왔는데 漢音이라고 하고,

14세기에는 宋元明朝에 내왕한 禪宗 승려들을 통해서 唐宋音이 들어옵니다.

국은 지정학적으로 통로입니다. 그래서 중국문명이 축적이 되지 않고 그냥 지나갑

니다. 한자의 전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본은 종착역으로 새로운 음이 오면

먼저 있던 것이 없어지지 않고 다시 쌓입니다.

 

越南은 한무제가 정복해서 천년 동안 지배를 했어요. 그러다가 10세기경 독립을 했어요.

그리고 11세기에 이씨 왕조가 중국문명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10세기에 전래가 되는데 唐의 長安 방언에 기초한 北方讀書音이다 라고 불란서 학자가

1920년대에 써낸 설입니다.
그런데 월남어의 낱말의 60%가 한자에서 온 차용어입니다.

남아어족에 속하는  언어인데 낱말은 60%가 차용어입니다.

한국에 전래된 시기

한국 한자음에서 六朝 이전에 古音이 반영되고 先秦시대에도 교류가 있었을
것인데 그것이 한자음으로 남는게 아니고 아예 한국어화 된 흔적이 있어요.

예를 들면 風을 바람이라 하죠. 바람이라는 것을 순수 한국어로 알고 있는데

중국의 선진시대의 고음은 plj m이다. 이것은 한대의 {史記}나 전국시대의

{楚辭} 속에 나와요. 飛廉, 蜚廉은 바람신의 이름인데 風자의 상고음을 한자로

두 글자화 한 것이다. 왜냐면 복성모가 소실되면서 두 음절화 한 것이죠.

갑골문에서 바람은 봉황의 봉자와 똑같이 썼어요. 그러니까 바람신을 봉황의

모습으로 고대인들이 생각한 것이죠. 갑골문 속에는 바람, 비, 河 등 모든 자연이

神이에요.

河는 북방에서 온 것으로 상고음이 gar인데 까링이 여기서 나온 것으로 제가 봐요.

熊의 상고음은 gwj m이다.